영조 탕평책 탕평채 청포묵 이야기

많은 음식 중 탕평채는 왜 탕평채가 되었을까요? 보통 음식 이름을 지을때 재료명이나 요리 방법 등에 의해 이름이 정해지잖아요. 그래서 보통 음식을 보면 아~ 이래서 그렇구나!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영조 탕평책 탕평채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이 글에서 자세히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조 탕평책 탕평채

 

영조 탕평채
영조 탕평채 한국문화홍보서비스 자료 참조

 

 

영조 탕평책




탕평책은 조선 후기 영조와 정조 시대에 시행된 정책으로, 붕당 간의 대립을 완화하고 조정의 안정을 위해 추진되었습니다. 탕평이란 ‘탕탕평평(蕩蕩平平)’의 약어로, 흔들림 없이 바르게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탕평책 시행 이전 조선 후기 사회는 서인과 남인이라는 두 정치 세력으로 나뉘어 심각한 당쟁을 겪고 있었습니다. 당쟁은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하고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탕평책은 군주와 양반 지식인 계층의 권력을 제한하고, 중앙 집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사회 구조의 변화와 함께 일반 백성들의 지위 향상이 이루어졌습니다. 탕평채는 이러한 변화를 기반으로, 세금을 공평하게 부과하고, 농업을 촉진하며, 상업을 발전시키는 등의 경제적 안정화를 추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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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탕평채

탕평채
탕평채 내 손안에 서울시 자료 참조

 

조선의 21대 임금인 영조는 궁중에서 일하는 여인 중 가장 낮은 계급에 속했던 ‘무수리’를 어머니로 두었던 불행한 왕이었습니다. 영조는 어머니가 다른 형이었던 왕 경종이 죽자 그를 독살시켰다는 오해를 받으면서 왕에 등극했습니다.

그러자 경종을 지지했던 소론은 영조의정 통성에 시비를 걸곤 했는데, 하필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가 소론과 가까운 사이였던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들이 임금의 자리를 넘본다는 심한 오해에 시달린 왕은 급기야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고야 말았고 뒤늦게 후회하게 된 영조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동시에 당파가 아닌, 인물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탕평책’을 정책으로 삼았습니다.




탕평채 유래

 

탕평채(蕩平菜)’라는 이름은 조선 21대왕 영조가 지었으며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고르다는 뜻을 지닌 ‘탕탕평평(蕩蕩平平)’ 에서 유래됐습니다. 조선시대 당쟁의 폐해를 몸으로 겪은 영조는 대립과 정쟁을 해소하고 정치적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여러 당파가 잘 협력하자는 탕평책을 실시했으나 계속되는 대립으로 지쳐 있던 어느날  모든 대신들을 모아 놓고 분쟁을 해결하고 탕평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다른 재료들과 고루 섞인 청포묵 요리에 ‘탕평채’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청포묵의 흰색은 서인, 볶은 고기의 붉은색은 남인, 미나리의 푸른색은 동인, 김의 검은색은 북인을 조선시대 권력을  대표하는 색이라고 합니다. 탕평채가 처음 등장할 당시가 서인이 집권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주재료로 흰색 청포묵을 쓴 것이라고 합니다.

탕평채에 대한 다른 흥미로운 해석도 있습니다. 탕평채의 재료 중 녹두묵은 녹색, 쇠고기는 붉은색, 미나리는 푸른색, 김은 검은색으로, 이는 오행의 색깔을 상징한다는 해석입니다. 또한, 탕평채를 먹는 방법은 각 재료를 따로 먹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버무려 먹는 것으로, 이는 붕당 간의 화합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탕평채 영양과 맛

 

탕평채는 녹두, 쇠고기, 미나리, 김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 있어 영양분이 풍부합니다. 청포묵은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풍부하고, 쇠고기는 철분과 단백질이 풍부합니다. 미나리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고, 김은 비타민과 식이섬유가 풍부합니다.

탕평채는 묵의 시원하고 담백한 맛과 쇠고기의 풍미, 미나리의 향긋한 냄새, 김의 감칠맛이 조화를 이루는 맛있는 음식입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시원하고 가벼운 식사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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